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붉은 분필 자화상(추정), 토리노 왕립도서관 소장
인물 메모습관

흩어진 7천 쪽이 인류의 보물이 되기까지 — 레오나르도 다빈치 노트 #1

편집부 2026年6月20日 10分で読めます
다빈치 새의 비행에 관한 코덱스의 펼침면, 거울글씨와 비행 연구 스케치가 함께 보인다
Frontispiece · 『새의 비행에 관한 코덱스』 —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거울글씨와 비행 연구 스케치

지난 호에서 우리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상아 메모장을 들여다봤습니다. 외출 중 짧게 적고, 저녁에 다시 펼쳐 고르고, 살릴 만한 것을 키워내던 두 단계의 의식. 프랭클린에게 기록은 매일 점검하고 다듬는 규율이었습니다.

그보다 약 두 세기 전의 이탈리아에는 정반대에 가까운 방식으로 기록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많이 적었지만, 평생 그 기록을 한 질서 안에 묶지 못한 사람. 해부도 옆에 장보기 목록을 적고, 기계 도면 아래에 빌려준 돈을 메모하고, “딱따구리의 혀를 묘사할 것” 같은 질문을 할 일 목록에 끼워 넣던 사람.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입니다.

자료마다 숫자는 조금씩 다르지만, 다빈치는 평생 약 1만 3천 쪽에 이르는 노트를 남긴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중 오늘날 살아남아 연구되는 것은 대략 7천 쪽 안팎입니다. 그러니 이 글의 “7천 쪽”은 그가 쓴 전체가 아니라, 가까스로 흩어짐을 견디고 남은 쪽들에 더 가깝습니다.

프랭클린이 기록을 정리의 기술로 썼다면, 다빈치는 기록을 생각이 흘러가는 자리로 썼습니다. 정리는 늦었지만, 적는 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편집자 註
N°002The Scattered Estate

한 사람의 노트가
여러 도서관과 컬렉션에 흩어지다

다빈치가 남긴 노트는 한 권이 아닙니다. 그가 죽은 뒤 여러 묶음으로 쪼개지고 팔리고 다시 엮이며, 지금은 밀라노·런던·파리·토리노·마드리드 등 여러 기관과 개인 컬렉션에 흩어져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코덱스(codex)’라고 부르는 묶음들 역시 대부분 다빈치가 직접 완성한 책이라기보다, 후대 사람들이 낱장을 모아 다시 묶은 결과입니다.

I
코덱스 아틀란티쿠스 (1,119장 · 12권)
밀라노 암브로시아나 도서관 소장. 현존하는 가장 큰 묶음으로, 16세기 말 조각가 폼페오 레오니가 흩어진 낱장을 큰 종이에 붙여 엮었다.
II
코덱스 레스터 (72쪽)
물·달·지구를 다룬 과학 노트. 1994년 빌 게이츠가 약 3,080만 달러에 사들여 ‘코덱스 해머’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III
코덱스 아룬델
런던 대영도서관 소장. 여러 시기·여러 주제의 낱장이 모인 묶음으로, 다빈치가 언젠가 순서를 잡아 정리하려 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IV
윈저의 해부 드로잉
영국 왕실 컬렉션 소장. 근육·뼈·장기·태아 등을 관찰한 해부 연구가 포함되어 있으며, 다빈치가 몸을 구조와 움직임으로 이해하려 했음을 보여 준다.
V
파리 수기본 A–M
파리 앵스티튀 드 프랑스 소장. 회화·역학·비행·광학 등 여러 주제가 주머니 크기 노트에 섞여 있다.
VI
마드리드 수기본 I·II
스페인 국립도서관 소장. 기계와 역학을 다룬 노트로, 오랫동안 행방을 알 수 없다가 20세기에 다시 확인되었다.
VII
포스터 코덱스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소장. 다섯 권의 노트가 세 권의 코덱스로 묶인 형태이며, 기하·물·건축·기계 메모가 뒤섞여 있다.
VIII
새의 비행에 관한 코덱스
토리노 왕립도서관 소장. 새가 바람을 타는 방식을 관찰하고, 그것을 비행 기계의 상상으로 옮겨 간 연구 노트다.
IX
회화론 (코덱스 우르비나스)
다빈치가 직접 완성한 책은 아니다. 제자 프란체스코 멜치가 흩어진 노트에서 회화에 관한 대목을 뽑아 사후에 정리했다.
다빈치는 많이 적었지만, 그 기록을 책으로 묶는 일은 끝내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노트는 사후 수백 년 동안 쪼개지고, 옮겨지고, 다시 엮였습니다.— 편집자 註
N°003How He Wrote

거울로 읽어야 하는 글씨,
한 장에 뒤섞여 담긴 메모(기록)

다빈치의 노트를 처음 펼치면 글자를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자 하나하나가 뒤집힌 듯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거울에 비춰야 익숙한 방향으로 읽히는 글씨. 우리가 흔히 말하는 거울글씨입니다.

왜 그렇게 썼을까요. 비밀을 지키기 위한 암호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오늘날에는 조금 더 실용적인 설명이 힘을 얻습니다. 다빈치는 왼손잡이였고, 깃펜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면 손이 젖은 잉크 위를 지나며 번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면 그 번짐을 줄일 수 있었지요. 다만 V&A가 설명하듯, 거울글씨를 둘러싼 추측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단정하기보다, 그가 자기 몸과 도구에 맞는 기록 방식을 찾았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글씨 방향이 아니라 한 장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입니다. 다빈치의 노트에는 분류가 거의 없습니다. 사람 두개골 해부도 옆에 물건값이 적혀 있고, 물의 소용돌이를 그린 그림 아래에 다음에 만날 사람 이름이 끼어 있습니다. 기계 설계, 책의 목차, 그림의 밑그림, 무대 장치 아이디어, 빌려준 돈이 떠오른 순서대로 한 페이지에 모입니다.

그에게 노트는 완성된 문서를 보관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생각이 지나가는 순간을 붙잡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니 정리가 덜 된 것이 결함만은 아닙니다. 적는 순간에는 분류보다 포착이 먼저였으니까요.

N°004The To-Do List

“딱따구리의 혀를 묘사할 것
— 호기심이 적힌 할 일 목록

다빈치의 노트에서 자주 인용되는 대목 중 하나는 그가 자신에게 남긴 할 일 목록입니다. 해부학을 공부하던 시기의 한 페이지에는 이런 항목들이 나란히 놓입니다.

해골을 하나 구할 것.
뇌 속의 빈 공간들을 관찰하고, 어디에 더 많고 적은지 살필 것.
딱따구리의 혀와 악어의 턱을 묘사할 것.
죽은 사람의 치수를 손가락을 단위 삼아 잴 것.

해골, 뇌, 딱따구리, 악어, 시신의 치수가 한 목록 안에 나란히 놓입니다. 그중에서도 “딱따구리의 혀”는 유난히 오래 기억됩니다. 그림을 그리는 데 당장 필요해 보이지도 않고, 비행 기계를 설계하는 데 곧장 쓰일 질문도 아닙니다. 그냥 궁금해서 적어 둔 한 줄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한 줄이 다빈치의 기록 습관을 잘 보여 줍니다. 쓸모가 확인된 생각만 적은 것이 아니라, 쓸모가 생길지 아직 모르는 질문까지 붙잡아 두었습니다. 딱따구리의 혀가 실제로 어떤 구조인지, 그가 어디까지 확인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질문을 흘려보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N°005Everything Connects

그의 진짜 재능은 연결이었다

다빈치가 위대한 이유는 그림만 잘 그려서도, 기계만 많이 설계해서도 아닙니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분야를 한 자리에서 겹쳐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연결은 노트 위에서 일어났습니다.

물의 소용돌이를 관찰하던 그는 그 흐름이 머리카락의 곱슬거림과 닮았다고 보았습니다. 강이 갈라지는 모양은 나뭇가지가 뻗는 모양, 혈관이 퍼지는 모양과도 이어졌습니다. 『코덱스 레스터』에서는 지구를 하나의 몸처럼 상상합니다. 물은 피, 바위는 뼈, 흙은 살. 한 분야에서 본 형태를 다른 분야에 겹쳐 보는 버릇이, 해부학자이자 화가이자 공학자였던 그를 한 사람 안에서 이어 주었습니다.

흔히 다빈치의 정신을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로 요약합니다. 다만 이 문장을 그가 직접 남긴 말처럼 다루기는 조심스럽습니다. 후대 사람들이 그의 노트 수천 쪽을 읽고 붙인 해석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 표현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의 노트에서는 따로 떨어진 관찰들이 자꾸 서로를 향해 움직입니다.

이 지점에서 다빈치의 노트는 단순한 기록장을 넘어섭니다. 머릿속 생각을 밖으로 꺼내 저장하고, 그 사이의 연결을 눈으로 보게 만드는 장치. 오늘의 말로 바꾸면 두 번째 뇌에 가까웠습니다. 니클라스 루만보다 수백 년 앞서, 다빈치는 이미 종이 위에 생각의 그물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원과 정사각형 안에 인체 비례를 겹쳐 그린 그림
Plate II ·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 c. 1490
원과 정사각형 안에 인체를 그려 넣은 이 그림은 기하학·해부학·건축이 한 페이지에서 만나는 장면처럼 보입니다. 서로 다른 분야가 겹쳐질 때, 다빈치의 생각은 더 멀리 나아갔습니다.
N°006The Order That Never Came

끝내 오지 않은 정리

코덱스 레스터의 한 펼침면, 물과 천체에 관한 거울글씨와 도해가 보인다
Plate III · 코덱스 레스터 · 물·달·지구에 관한 노트

다빈치도 자기 노트가 뒤죽박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코덱스 아룬델』에는 흩어진 낱장을 언젠가 주제별로 정리하고 싶다는 뜻이 남아 있습니다. 문제는 그 ‘언젠가’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회화에 관한 글을 책으로 엮으려 했지만,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메모를 보태고, 목차를 고치고, 다시 생각을 붙이는 일은 계속됐지만 책으로 닫는 일은 자꾸 뒤로 밀렸습니다. 적는 일은 현재였고, 정리는 미래였습니다.

정리는 결국 사후에 시작됐습니다. 제자이자 상속인이었던 프란체스코 멜치가 흩어진 노트에서 회화에 관한 대목을 골라 『회화론』의 바탕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원본의 상당수는 흩어지거나 사라졌고, 남은 것은 여러 손을 거쳐 다른 이름의 코덱스로 묶였습니다. 다빈치의 노트는 그래서 더 역설적입니다.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흩어졌지만, 적어 두었기 때문에 남았습니다.

N°007Why Memo Comes First

결국, 적는 것이 먼저다

생각은 머릿속에 있을 때보다 밖으로 꺼내 적을 때 더 또렷해집니다. 막연하던 아이디어도 문장으로 옮기는 순간 모양이 생기고, 다른 생각과 만나며 커집니다. 이런 일을 흔히 인지의 외재화라고 부릅니다.

다빈치의 노트가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먼저 적었습니다. 떠오른 질문도, 관찰한 장면도, 돈을 빌려준 사실도 일단 종이 위에 꺼내 놓았습니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생각들은 서로 닿고, 겹치고, 나중에 더 큰 아이디어가 되었습니다.

물론 아쉬움은 남습니다. 그 많은 메모를 제때 분류하고 체계를 잡았다면, 더 단단한 책과 연구로 돌아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500년 뒤 결과를 다 아는 우리가 하는 말입니다. 더 분명한 사실은 따로 있습니다. 그가 적어 두었기에, 그 모든 것이 지금 우리에게 남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분명합니다. 분류도 체계도, 적어 둔 것이 있어야 시작됩니다. 적는 것이 먼저입니다.— 편집자 註

그래서 다빈치에게서 우리가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완벽한 정리법이 아닙니다. 떠오른 질문을 놓치지 않는 태도, 분야를 가르기 전에 한 페이지에 올려 두는 용기, 아직 쓸모를 모르는 생각도 기록해 두는 습관입니다.

그다음에야 질문이 남습니다. 이렇게 쌓인 메모를 어떻게 다시 읽을 것인가. 서로 멀리 떨어진 기록을 누가 이어 줄 것인가. 다빈치에게 끝내 부족했던 것은 호기심도, 관찰력도, 적는 습관도 아니었습니다. 부족했던 것은 그 많은 기록을 다시 읽고 이어 줄 동반자였습니다.

N°008The Partner He Never Had

500년 만에 채워지는
빈 자리

다빈치가 못다 한 정리는 후대의 편집자와 학자들이 대신했습니다. 낱장의 순서를 맞추고, 거울글씨를 읽고, “딱따구리의 혀” 같은 한 줄이 어떤 관심과 이어지는지 추적했습니다. 그 일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Step I
01
먼저 적는다
해부도 옆 장보기 목록처럼, 분류보다 포착을 앞세웁니다. 아직 쓸모를 모르는 질문도 남깁니다.
Step II
02
다시 읽는다
시간이 지난 뒤 메모를 꺼내 보면, 그때는 보이지 않던 반복과 관심사가 드러납니다.
Step III
03
AI와 연결한다
AI가 흩어진 단상 사이의 실마리를 제안하면, 정리는 혼자 미뤄 두는 일이 아니라 함께 시작하는 일이 됩니다.

그날 저녁 다빈치의 책상 위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상상이지만, 이 상상은 오늘의 기록 도구가 할 수 있는 일을 꽤 정확히 보여 줍니다.

L.d.V. (오늘의 메모)물이 소용돌이치는 모양 — 머리카락의 곱슬거림과 닮았다. / 딱따구리의 혀를 묘사할 것.
정리 AI오늘의 두 메모는 지난달 적은 “강이 갈라지는 모양은 나뭇가지와 닮았다”와 이어집니다. 자연은 같은 형태를 여러 곳에서 되풀이한다는 묶음으로 저장해 둘까요?
MCP · 생각기록장 → AI

좋은 기록 도구는 어떤 도구일까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체계적인 분류가 가능한 도구일까? 아니면 메모를 손쉽게 하는 도구일까? 오늘의 다빈치 인물탐구가 던져준 해답은 '생각을 손쉽게, 포착하는 순간 바로 적을 수 있는 도구'입니다. 

다빈치가 우리에게 알려 준 것은 단순합니다. 적어 둔 것은 살아남습니다. 생각이 나면 우선 메모장부터 펼치세요.

생각기록장으로 시작하기한 권 = 한 주제. 먼저 적고, AI와 함께 다시 읽기.
N°009Sources

참고한 자료

꼼꼼한 매거진 · 인물 메모습관 시리즈 · Leonardo da Vinci N°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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